본질이란 무엇일까?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이 물음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어떤 현상이 있다면 그 피상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것일까?
당연히 어릴 때의 나는 호기심천국이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열심히 읽게 되었다. 책은 언제나 흐름을 갖추어 서술되므로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때로는 글자의 나열만으로도 어딘가의 심금을 건드려 아름다움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유형이라 지금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기 전에는 좀처럼 말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책으로 배운 세상은 실제와는 사뭇 달랐기에 어렸던 나는 말수가 더 적었던 것 같다.
언제나 틀리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틀리기가 무서웠다.
현실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던 것도 많았고,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다채롭고 강렬하고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보던 것 또한 고작 어린애의 세상일 뿐이었다.
이런 유형의 애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외부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반면 실제 생활에서는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랬다. 어떤 행동을 하면 예상대로의 반응이 돌아올 때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발화와 행동의 의도는 전하고 전해지며 왜곡되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마다 당혹감 혹은 아득함을 느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생각했다. 대충 미소짓거나 웃는 것이 무엇이 돌아올 지 모를 말보다는 나았다.
그때는 그렇게 더더욱 입을 다물었지만 언젠가부터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을 어떠한 법칙에 따라 나열할 수는 없는 거구나.
어떤 건 인과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혹은 너무나 복잡할 수도 있다. 혹은,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걸 수도 있다.
그냥 그런 거구나.
누구나 성장하는 계기가 있듯이 나는 그걸 깨닫는 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런 걸 깨달았다고 갑자기 전구에 불이 켜지듯 반짝이는 해결책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이고, 세상에는 이런 인간도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땐 몰랐지만 남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비일비재하다.
나는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으며 다만 생각이 너무 많을 뿐인 보편적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하지만 성향은 어쩔 수 없어서 나는 지금도 참으로 호기심이 넘치는 인간이다.
살면서 스스로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썼기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나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동시에 남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굉장히 궁금해 한다. 나와 타인의 의견이 모두 합치하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한 보편적 진실이자 본질이라면,
나는 맨 처음 말했던 것처럼 그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을 알아갈 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왜 그랬을지를 따져보며 심층을 되짚어 따라간다면
그 사람과 그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작정 입을 다물고 살던 때 몸소 체감하며 깨달은 게 있다면, 어쨌든 몰이해는 해롭다는 점이다.
지식이 필요할 때면 책을 읽듯 사람과 의견을 나눌 때는 대화를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 외로 대화를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내 생각엔, 너도 나도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잘 인지한 채 서로의 의견을 알아가는 게 진정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상황은 의외로 참으로 갖추기가 힘들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땐 그러면 나도 금방 흥분해 되받아치기 일쑤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방은 아주 비논리적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지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좀 더 크고 나서는 어찌 되었든 꾸준히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
그래야 왜 그런지 서로를 이해하고 합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치는 작업이다. 아주 지겨운 작업이다.
어찌됐든 쌍방의 인내심에 한계는 존재하기 때문에 임계점은 언젠가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노력해서 비교적 평화롭게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 한 30%라고 한다면, 나머지 70%는 거의 그냥 싸움으로 끝나고 만다.
나는 친밀한 사이의 다툼을 해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록 나도 살면서 완전한 타인인 누군가와는 딱히 싸워본 적도 없지만,
다툼이란 의견차이가 있어 발생하는 거고 적어도 그걸 좁히고자 노력을 하는 행위이다.
감정이 상할지언정 차라리 무시하는 것보다 어쨌든 노력을 한다는 데 나는 훨씬 큰 점수를 준다.
무시하는 순간 쌓이는 몰이해는 자칫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골을 만들어버리기도 하니까.
역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가끔 내가 너무 큰 바람을 가진 걸까 생각한다.
남들은 아무래도 좋을 것을 쓸데없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나는 누군가 나를 위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랜 시간을 이해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인간은 서로를 100%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상적인 숫자는 있을 수 없다. 완전히 동일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남이 되어볼 기회 또한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걸 알고서도 노력해줄 수 있다면.. 그건 참 멋진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결국은 싸우고 잔뜩 화가 난 채로 끝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꾸준히 대화를 해보고자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하는 건 적어도 나와 상대방은 같이 걸어갈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는 단발적으로 잘리고 엉킨 이해가 쌓여 있을 뿐인 어떤 무더기가 아니라,
최대한 곱게 보듬고 정돈하여 오래 두고 볼 만한 그런 것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몇십 년을 두고 볼 사이라면,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내 나이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소망일 지는 몰라도,
나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려 노력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아주 옛날부터 간직해 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