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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쯤은 내게 정말 힘든 날이었다.
그저 그렇게 괜찮은 날들이 흘러가던 중, 새로이 다짐했던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요동치는 감정들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내가 두어 해 전의 모습으로 퇴보한 건 아닐까 좌절스러웠다.


분명 어느 주는 조증 증세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사고싶은 물건들이 우수수 떠오르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으로 가득했다가도
그 다음은 거짓말처럼 모든 게 재가 된 것 마냥 무기력하고 심한 도피욕구과 두통에 시달렸다.
일관되었다가도 불규칙한 식단 때문인지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크기에 상관없이 내게 언제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가족 이슈 때문인지.. 

이럴 때면  정말 언제까지 스스로를 보살피며 줄타기하듯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지, 얇은 유리로 만든 세공품마냥 한없이 유약하게 느껴지는 내면상태에 질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 돌발적으로 연차를 내고 쉬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극도의 회피상태를 찍어버린 것이다..
그날은 주간회의도 있었는데, 주 내내 진전이 없는 듯해 답답하면서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이미 월요일부터 미칠 듯한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불과 그 전 주는 많은 것을 해낸 듯한 후련함과 충족감을 느꼈으면서,. 정말 확확 상태가 바뀌는데, 이게 내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점점 줄어든 듯한 수면시간도 폭주해 거의 1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이 즈음의 거의 2주간, 그렇게 졸업이라는 두 글자가 멀어보인 적이 없었다.
그냥 자신이 없었다. 나는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았고, 논문이라는 걸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았고, 이대로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때려쳐야 하나? 이대로 그냥 수료해버리는게 맞는 건 아닐까, 어쩐지 미래의 언젠가 나는 이 길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마저 들었다. 극도의 불안과 도피심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어느 날은 몇십 분이나 멍해져 있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니 출근길 지하철이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거지? 싶은 비현실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오늘이 언제인지, 무슨 요일인지조차 모호해 한참을 떠올리려 노력해야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불과 얼마전인 그 때만 해도 너무 힘들었다 ㅜㅜ 결국 하루 연차내서 그냥 땅굴 속으로 도피해 버리고, 이후 조금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나름의 공부계획을 설계하는 걸로 어느정도 최악의 상태를 벗어났지만 아마 앞으로도 언제든 그런 수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휘청거리고 우왕좌왕 할지언정 스스로의 상태와 예비신호를 감지하고 어떻게든 나를 원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는 이 힘이 내가 몇 년간 스스로를 돌아보고 선생님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며 얻어낸 값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


이렇게 우울삽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어둡고 무기력한 어느 날의 와중, 꿈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걸 좋아하냐며 너털웃음을 짓던... 
생전 할아버지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꿈 속에서도 아, 이건 꿈이구나 단번에 알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꿈에 와주신 걸까? 너무너무 반가웠지만 동시에 할아버지는 편히 쉬셔야 하는데,
계속 땅을 내려다보며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시면 안 되는데, 싶어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할아버지는 별 말씀 없이 머리맡에서 한동안 나를 지켜보고 일어나셨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떠나시려던 할아버지의 발을 불쑥 붙잡고 말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하고.
나는 누워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말만은 꼭 할아버지께 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물이 많이 났지만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 
계속 할아버지의 발을 붙잡고 울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할아버지는 그래, 하고 대답을 주셨고 그 후로 잠에서 깬 것 같다.


깨어나서도 한참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잠시간 내 생활에 잊고 있던 그리움과 슬픔이 밀려와서 참기가 힘들었다.
동시에 할아버지가 근면 성실 정직을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데, 이렇게 나태해선 안 되는데 싶어 후회스런 마음과 함께 죄송스럽고 안타까웠다.


이상하게도 그 때 내 몸도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누워있다가 일어난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 일은 정말로 그리움이 불러낸 단순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할아버지와 나는 여전히 이어져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모습을 봐서 너무 반가웠지만..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할아버지가 주님 곁에서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다. 아무 걱정과 염려와 근심 없이... 평화롭게.
-


이 경험을 잊지 않고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일상과 반복에 매몰되어 내가 바라는 것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가장 바라셨던 일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고, 성공적으로 내가 원하는 걸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럴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의심치 말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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