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성취의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이들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배부르게 하면 아무것도 못해. 소위 헝그리 정신 말이다. 무언가 단단히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어 그걸 채우기 위해 죽어라 아등바등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런 방식만이 결국 성공에 다다르는 길이라는 것. 지금 생각하면 병든 착각 같다.
어째서 한계까지 내몰려야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걸까. 그렇게 절박하게 얻은 성취가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나를 핍박하는 지난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허상이라는 의미다. 무엇이든 성장에는 자양분이 필요한 것처럼, 충분한 휴식과 자원이 있는 상황에서 더 안정적인 성취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에 만족한다는 말은 결코 무언가를 대강 해낸 채로 안주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면 누구나의 인생은 한 개의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전력질주가 아니라, 여러 개의 역으로 이루어진 기찻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찾아가려 살면서, 왜 그 길은 고난으로 가득 차야만 진정한 행복을 얻었다고 평가하는 것일까?
지금은 그런 방향으로 나를 현혹하고 깎아가려는 말들을 경계한다. 그런 자기 부정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의 나를 미워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모습만을 꿈꾸며 발버둥치지 않아도, 나는 꾸준히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