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녀가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랐다.
나의 대척점이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라고, 나는 오랜 시간 생각해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고 싶어하고, 그건 내 주변인들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나는 항상 상대의 행동과 동기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 상대가 가진 면면에 대해 때로는 왜? 라는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고, 좋아하는 행동은 하고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싶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예측을 해보기 위해 상대의 반응을 보고 깊게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원인과 동기를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 우주에 사는 개미만한 한 인간에 불과하고, 내 이지의 범위는 이 세계에 비하면 티끌만큼이나 작고 우매하다.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현명한 자가 아니며 애초에 그건 누구라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나는 아주아주 완벽하지 못해서, 사고력은 발달했을 지 몰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며 때로 남들의 세심한 감정을 놓치곤 한다. 그럴수록 더 노력해도 불가능은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수많은 시행착오로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어쩌면 공감력이 남들보다 다소 떨어지는 사람인지도 모르니, 어느 부분에서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그렇게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우려 계속 노력해 왔기 때문에 큰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없이, 사회의 합의된 예절과 배려를 그럭저럭 잘 파악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 1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자체가 어쩔 수 없이 평균에 비해 좀 더 차분하고 내성적인 타입이긴 해서 존재만으로도 남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고맙게도 소수의 내 주변인들은 그런 내 노력을 알아주어 나를 따뜻한 사람이라 말해주고 좋게 평가해 준다.
이렇게 길게 주절거린 이유는 내가 노력을 해 왔고, 그렇게 나의 인간성에 대해 실패한 사람은 아니라고 애써 위안하기 위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타인에 대해서는 항상 배려심 있고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나의 가장 큰 실패는 언제나 나의 엄마다. 내 세계의 완전한 대척점, 어릴 때부터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항상 나에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꾸준히 상기시켜 주며, 때로는 나의 노력이 헛되고 부질없을지 모른다는 좌절을 주는 사람.
모두가, 특히 딸들은 모두가 어머니와 이렇게 사랑과 대척의 어딘가를 헤매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나와 그녀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어서일까.
나는 분명히 그녀를 너무 사랑하지만, 때로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미워했다.
이십여 년 전에는 내가 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것 같아 슬펐고,
매일같이 나를 매로 때리고 때로는 심하게 걷어차고 나를 믿지 않아 미웠고,
십여 년 전에는 그랬던 십 년간이 문득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서 미웠다.
그래도 그를 이해할 수 있어 사랑스럽고 고맙다가도,
이미 이렇게나 불안하고 부러져 있는 나를 전혀 예상하지조차 못하는 그가 또 미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칭하는 그가 미웠다. 나는 당시 일주일에 한 번 정신과 상담을 다니며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자괴감과 무능감에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웠는데도.
결국은 따지고 보면 그것 또한 모두 사랑으로 인한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신으로 인해 힘들었다고 말하면 그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해받고 사과받지 못한 채 나만이 노력하고 바뀌고 살고자 절박하게 발버둥치는 것 같아 슬펐다.
그러나 그 발버둥이 결국은 나를 내면에서부터 조금은 변화시켰고, 나이를 먹어 시간이 쌓이며 나도 제법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생각해도 '그래도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것이 행운이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만큼 극복하고 성장한 것 같다.
그는 나와는 달리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께서는 삼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가난했고, 장녀로서 그녀는 너무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했고 그래도 반듯하게 자라 스스로의 힘으로 좋은 대학을 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도 얻었다.
그리고 나를 임신해 큰 병을 앓았고, 나를 키우고 건강을 위해 퇴직을 해 반평생을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이자 아내로 살았다.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는 감히 겪지 못한 고난으로 인해 엄마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고로 인식하는지 전혀 모른다. 알 수 없다. 나같이 모자람 없이 큰 행운아는 같잖은 분석과 노력을 총동원해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근본적인 불가능 앞에서 나는 한없이 겸손해져야 하는데도, 항상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 속상해하고 우리가 너무 달라 아쉬워하곤 하는 소인배며 못난 딸이다.
어릴 때는 잘 몰랐으나 이제 나는 나의 교육이, 나의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크게 자리했는지를 잘 안다.
왜 나를 그토록 자신과 동일시하는지 나는 오랜시간 너무 답답했다.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나와 그가 너무 다른 사람임을 알았는데도 그는 꿋꿋이 나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가 자신이 성장하는 듯이 나를 교육시키고 훈육했다. 그러고도 항상 갈증을 느꼈고, 나는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내 일거수일투족과 인간관계 전반을 통제하고 싶어하며 지칠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너무도 질리고 힘겨웠다. 나는 이미 엄마에게서 태어난 지 십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직도 나를 한 몸에 품고 있는 듯 분리되지 못하는, 분리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처럼 그녀와는 너무도 다른 성격과 천성을 가진, 내 영역을 침범받고 싶지 않은, 평균보다도 훨씬 독립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는 당당하게 얘기한다. ㅇㅇ동을 다 훑어봐도 나는 아주 편하게 자란 사람이라고. 누구네 집은 훨씬 힘들고 매타작도 훨씬 많이 했는데, 나는 아주 널널하게 자란 거라고.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고 이 동네를 아우르는 과한 치맛바람과 열성이 부질없고 해악적이며 일종의 병적인 군중심리에 가깝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조목조목 따지고 분노할 만큼 어리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시간이 가며 그녀도 아주 느리지만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이 중대한 인간사가 닥쳐옴에 따라 예상치 못한 갈등이 또 눈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예전이 입시와 수능이었다면 이제는 결혼인 것이다.
문제는 나는 여전히 그녀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준비에 있어서도 개인사로 인해 전혀 편안하지 못했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쇠약해질 만큼 힘든 시집살이를 보냈다. 할머니는 여전히 명절만 되면 오색전을 차려내야 할 만큼 완고하고 기준이 높으신 분이었고, 그는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그 때문인지 나의 결혼준비에 대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남자친구와는 아주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에 아직까지 전혀 트러블 없이 결혼준비를 중반까지 마쳤다. 우리는 둘 다 공학을 전공했고 현상을 인식하는 사고회로마저 비슷해서 그런지 예상하고 지향하는 규모도 비슷했고, 무수히 듣고 봤던 말들과는 다르게 예상외로 부딪힐 일이 딱히 없었다. 물론 불만이 있는데 말을 아끼는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남들의 평균적 연애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을 봐온 나는 그게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나 엄마는 그 모든 것이 걱정인가 보다. 말로 하지 않는 무언의 영역에 도사리는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이... 나는 진심으로 이해하지만 몇 번이고 엄마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솔직히 그런 가능성은 나도 잘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 맘속도 제대로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겠는가?.. 엄마 말대로 나는 뭔가를 잘못 파악하고 실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괜찮지 않은데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정말 괜찮은 걸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보고 들은 많은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남들보다 일찍 발품을 팔고 정보를 수집하고, 하여간 정말 무지하게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근데 나는 솔직히 그런 게 좀 귀찮아서 거의 안했다ㅎㅎ..; 그래도 다행히 주변에서 업체를 잘 소개받았고 우리 취향도 그렇게 고가가 아닌지, 혹은 결혼시장이 조금은 수요와 공급이 변했는지 몰라도 내 생각엔 그럭저럭 남들 하는 만큼 잘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것도 걱정이다. 내가 너무 절약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딱히 절약하려고 노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500원 아니라 만 원도 걸 수 있다. 그리고 이만 원 걸고 말하는데, 우리는 절대 저렴한 결혼을 하고 있지 않다..;;;
덧붙여 솔직히, 나는 여러 개의 옵션이 있다면 가격도 고려사항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좋고 저렴한 것과 무지 좋은데 무지 비싼 것 중에 고르라면 내겐 가격도 선호도에 분명히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다. 나만 그런건가?
나는 엄마가 결혼하던 시절을 모른다. 내게는 너무도 다정하신 우리 할머니가 엄마에게 어떤 혼수와 예단을 원했고, 부족함을 얼마나, 어떻게 눈치 주셨는지도 잘 모른다. 나는 어쩌면 문제가 있는 결혼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안전불감증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실제로 내가 느끼듯 이 결혼에는 정말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며 가시적이지 않은 문제의 모든 가능성을 미리 예방하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에 아주 부질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퍼즐 한 귀퉁이가 맞춰지지 않은 것 같다. 엄마는 물어볼 때마다 다른 말과 행동을 한다. 무엇이 아쉽냐고 물어보면 전혀 아쉽지 않다고 하다가도 어제처럼 약간 언성이 높아지면 사실은 좀 아쉽지! 라고 말씀하시고, 그 표정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이 항상 비친다. 그러면 나는 가격이 비싼 게 꼭 좋은 건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 엄마는 그렇다고 하면서, 너희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 동의해 주신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그리 좋지 않다. 그 원인을 물으며 남들은 어떻게 하길래 아쉬움이 있는지 물으면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결혼식을 아예 하지 않는 집도 있다며,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신다. 그럼 나는 아주 혼란스러워진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항상 아쉬운데 규모가 중요한 건 아니고 남들이 하는 게 중요치 않은면, 도대체 그 아쉬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 상황에 해결책이 있는 걸까?
나도 나만 좋은 결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다같이 만족하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문제는 나는 아쉬움의 원인도 모르겠고, 개선점도 모르겠다. 그런 상태로 매번 말과 행동이 다른 엄마의 아쉬움을 보니 나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답답해 서운해진다.
어쩌면 여기에 답은 아예 없을 지 모른다. 나는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이게 가장 해답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어쩌면 가격으로 나를 시집보내는 허함과 아쉬움, 그리고 본인의 힘들었던 결혼 준비를 또다시 투영하며 존재하지 않는 기준치와 가격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에 아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역할은 그저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좋은 대화를 하고 공감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력하고 싶은데, 나는 또 원래 그렇게 사근사근한 딸이 아니라 참으로 아쉽고 미안하다. 노력을 많이 하는데도 번번히 엄마와 조금이라도 언성이 높아지면 너무 다른 사고방식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너무 답답하고 벽에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말에 그렇구나, 라고 현상을 관찰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도 나는 자꾸 내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것들 때문인지 유독 엄마 앞에서는 좀 더 감정적이다. 더 미안하고, 고맙고, 서운하다.
성인이 된 후로 엄마와 말다툼을 하면 언젠가부터 내가 먼저 사과했다.
딸이 된 도리에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굉장히 솔직한 성격이라 머리가 좀 차가워지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 또 표현해야 직성이 풀렸다. 난 감정적인 면에서 많이 서투르긴 하지만 적어도 고맙고 미안한 건 그 때 그 때 표현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물론 미안함보다 고마움이 매번 표현하기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어쩌면 내가 사과를 비교적 일찍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엄마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주로 혼나거나 서운한 쪽은 엄마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게 좀 서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른이면 좀 더 먼저 이해하고 포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선지 은연중에 나만 또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같다.
해답이 없는 문제도 있는 법인데, 내 성격이 그래선지 자꾸 잘 모르겠으니 미결인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허상인 것처럼, 어쩌면 그렇게 답이 없는 게 그냥 답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관계란 게 고장난 컴퓨터처럼 뚝딱 해결책을 찾아 적용하면 해결되는 그런 게 아닌데도..
겸허한 탐험가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자 함에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못난 인간인가 보다.
이런 순간에는 언제나 스타트렉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Space, a final frontier..
타인이란, 아마도 누구도 그 끝에 도달하지 못할 미개척지일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가족이고, 배우자이고, 가까운 사람일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