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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1.10.27 여정

-

This is a secret.
Sorry....

문득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을 듣고
오늘도 마음 속이 몽글몽글 해졌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렇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게임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아니라 마치 실제 현실에서 겪었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때와도 비슷한.
아무래도 마비노기는 내게 단순한 게임이 아닌 추억이 담긴 공간으로써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이 게임을 좋아하는가? 하고 가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지만 언제나 도달하는 같은 결론이다.

여중생A 라는 웹툰이 있다.
몇년 전 드라마화도 되었던 웹툰인데, 드라마는 어쩐지 내 환상을 깰 것 같아 망설여져 안 봤지만..
원작만큼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웹툰에도 주인공 미래가 하는 게임이 마비노기로 나오는데 ㅎㅎ 
꼭 그래서는 아니고, 연재 때부터 이건 내 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게 공감하며 보았던 웹툰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와 미래가 처한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만화에 담겨있던,

미래가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정확히 내가 학창시절 느꼈던 것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시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들었던 십 대의 나는 상당히 게임에 몰두했었고
세밀한 생활감과 커뮤니티를 잘 살린 마비노기의 게임성과 맞물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꽤나 깊은 유대를 쌓았었다.
랜선 너머 온라인에서, 비록 실체가 없는 관계일지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밀도있는 유대감을.

사실 현실과 다름없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고 울고 웃고 싸우고 마음 상하기도 했다.
참 묘한 경험이었다.
닉네임 뒤에서, 사실 지나가려면 얼마든지 지나갈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랜선 인연을 유지하고 울고 웃고 싸우기도 하는 것이.
일부는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지만, 남은 이들과는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 날 정말 친구처럼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모두 달랐지만 다함께 지내는 게 참 즐거웠다.
새벽에도 게임 속 모닥불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심지어는 새해에도, 명절에도 현실 대신 게임 속 집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하를 나누었다.

그 때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어 막연히 나에게만 소중한 추억일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십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문득 떠올라 안부를 물으면 바로 반갑게 응답하는 그들에게서
그들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당시를 추억하고 있음을, 좋은 기억으로 나와 그 때를 기억하고 있음을,
그렇게 한 켠에 묻어둔 마음이 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선지 나는 학창시절, 특히 게임에 마음을 많이 쏟았던 중학교 후반~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면
현실보다 게임에서 만났던 나의 랜선 친구들과 게임 속에서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현실도피, 냉정하게 말하면 네 글자로 간단히 함축될 수 있는 감정들일지 모르나
내게는 쓸쓸하고 힘들기만 했던 청소년기를 버티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자 추억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더욱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마비노기가 타락(?) 해도,
나는 이렇게 브금만 들어도 아련한 감상에 젖어버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게임으로 꼽게 되는 것이다.
내게 마비노기란 게임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내가 몸담았던 세계이고 소중히 여기는 추억과 사람들을 품고 있었던,

한 마디로 내가 살았던 또 하나의 현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 명의 미래였고, 

청소년기를 깨고 나와 열심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또 한 명의 미래로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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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4. 17:58  ·  단상    · · ·

목요일은 매주 재마다 성당을 가며 챙겨서 그런지 항상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7주 만에 나도 모르게 습관이 들었는지.. 내 무의식이 어떤 사이클을 따라 일주일을 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관성이 강해서 바쁠수록 오히려 일상에 활력이 있고 늘어지면 한없이 늘어지는 스타일이다. 마치 고무줄 같이..
요즘은 챙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아서 플래너에 일정을 적다 보면 마치 벽돌처럼 시간을 조립하며 생활하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요샌 정리욕구가 더 강해져서 가방 안 소지품도 파우치로 정리해서 들고 다니고 하여간 시간이든 물건이든 자주 보고 쓰는 건 정돈을 해야 흡족하다.
이럴 때면 내가 J라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실감하게 된다 ㅋㅋ  
예전엔 엥 J라니 나 P 아냐? 하고 좀 의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본성은 J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활을 잘 챙기며 비교적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종종거리며 지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그 곳에 있다.
잔디밭과 진구와.. 동대문 거리와.. 지하철 많은 곳에, 많은 장소와 시간에..
아무래도 내 마음 어딘가를 조금씩 그 곳들에 뿌려두고 온 것 같다.
아직도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가 귀에 생생한데..
 
아쉬움이라면.. 마지막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너무 크다.
후회는 할수록 끝이 없어 덧없다 생각하나 단 하나 정말로 후회스러운 것은..
한 번이라도 모시고 여행을 떠나볼 것을.
가족여행으로 다같이 가는 그런거 말고 내가 먼저 할아버지와 가고 싶다고, 여기 가 보자고 말씀드릴걸.
입시 때 자주 못 뵈어서 아쉬워하시던 할아버지께 대학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랑 여행 많이 갈 거라고 약속했는데. 
나는 어째서 그 약속을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했을까......

갓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만나서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낯선 조류를 따라 바삐 헤엄치느라 정신이 없었고,
조금 자라 가까스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을 때엔 
이미 때가 늦어 두 분 모두 비행기를 타는 걸 힘들어하시게 되었다.

그 때는 물론 당시 막 알을 깨고 나오던 나로서는 
천지개벽과 다름없이 인생과 세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만에게 매몰되었던 지난 시간들이 참 후회스럽다.
그 시간들이 있어서 나는 성장하고 지금껏 생존하였으나
언제나 곁에 있을 때는 실감하지 못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정작 좁은 시야로 놓쳐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얄팍한 오만함인가.

어쩌면 계속계속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담담하면서도 일견 무표정해 보였던 모습은 어쩐지 슬픈 기운으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나는 너무 많은 걸 받기만 해서 그 때까지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부디 나도 정말로 당신을 사랑했음을 알아 주시기를.
내 안에 품고 있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바로 당신께서 마련해 주신 터전 위에서 꽃을 피웠음을..
부디 알아 주셨기를.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평안히 안식하세요. 나의 할아버지.

-다시 만날 생을 향하여 걸어가는 어느 날, 

당신의 사랑하는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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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3. 16:20  ·  기억    · · ·

벌써 삼재가 지나고도 하루이다. 꼭 3주가 되는 날 ...

 

그 이후로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도 밖에서도.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삶과 태도에 대해서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지키고자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토록 간절하고 절절하게 바랄 수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다.

외적으로는 또 잘 살고자 나름대로의 몸부림을 치게 되었다.

여러모로 나와 내 주변의 현실에 대해 자각하고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인간은, 결국 상실이 있어야만 깨닫는 걸까?

그러나 이제 지나고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주어진 시간이,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웠음을, 

언제나 지나고서 추억하기에는..

 

특히 가족과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180도 바뀐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다.

십 수년간 너무도 소홀했다는 걸 깨달은 큰 두 가지인 것 같다.

시간의 무서움을 몸서리치게 깨달아버린 뒤 세어보니 시간이.. 이 또한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매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퇴근하고 다만 최소한 30분, 한 시간이라도.

뭔가 대화를 하고, 함께 거실에 앉아 있고, 내가 관심있는 것을 얘기하고 또 부모님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삼우제를 끝내고 돌아온 날 나 스스로 약속한 것이 단 한 가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 것.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것,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과 정성을 다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거꾸로 생각해 보면 사실 내가 평생토록 가장 바랐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바라기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실천해줄 것을 나와 약속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최대한 그들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고자.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끝까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도록.

 

예전에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인 김태원 씨가 딸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이 친구(딸)가 태어날 때부터 제가 제 자신과 약속한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친구라고 착각하도록 연기를 하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가족이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나 뿐이므로.

 

 

신앙 생활에 대해서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삼 주째 거의 매일 묵주기도를 올리고 있다. 물론 결심과 달리 며칠 빼먹긴 했는데.. ^^;

아무튼 그래도 엄청난 변화다. 

 

나는 사실 천주교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영아세례를 받고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니며 영성체를 받았다.

크게 독실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주일에는 성당도 꼬박꼬박 다니고 부활절엔 계란도 색칠하는 신자였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느라 성당을 부실하게 다니다가 그만 십 년 넘게 냉담자냉감자로 지내게 되었다.

 

그 뿐인가, 같은 무렵 철학과 독서에 빠져들며 신이란 존재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을 세우게 되어 의도적으로 형식적인 제례를 거부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단순한 고집은 아니었어서 모교인 모 대학교 채플 거부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기독교 수업에서도 대놓고 종교에 대해 무지 시니컬한 에세이를 쓰기도 하는 등..

하여간 분명 유신론자이긴 했으나 종교의 분화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고, 특히 정형화된 형태와 관습에 엄청 염증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 고집과 아집, 나름대로 옳다 믿었던 신념조차 모두 내려놓게 만드는 것이, 어딘가엔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이토록 절실하게 무언가를 바래본 것은 진정 처음이었다.

정말 억겁의 시간을 넘어서라도 간절히 바라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닐까?

 

 

종교는 이성의 담론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믿음이란 이지보다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마다 이런 간절한 소원을 품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또 이런 바람을 가지게 되면 그 어떤 형식이든 뭐든 중요치 않구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종교에서 말하는 특정한 신의 형태에 대해 큰 믿음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여전히 회의감은 존재하며 내 기도는 여전히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절대자를 향한 것이지만,

적어도 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몇 천년을 이어져온 사상에는 분명히 그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형식과 제례도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닐 거라고..

그렇게 겸손해져 간다. 가족도, 종교도, 많은 것에서..

 

 

-

기도를 하는 만큼 묵주도 계속 착용하고 있다. 앞으로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지니고 다닐 것 같다.

사실 처음으로 지니기 시작한 것은 보호의 의미였다.

입관식 직후와 그날 밤에 정말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한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무튼 겨우 잠들고 깨어나자마자 묵주를 찾아 지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날부터 줄곧 착용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은 잘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운동이며 이것저것 하느라 더 활동적으로 보내는 것 같은데,

확실히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 있어서 잠은 여전히 잘 못 자는 것 같다.

그래도 운동을 시작하니 확실히 나은 것 같다. 건강해지면 더 괜찮아지겠지.

 

처음으로 내 손으로 묵주도 사서 끼고 엄마에게 선물도 했다.

너무 좋아하시는 걸 보며 진작에 이렇게 해볼 걸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내 마음에 꼭 드는 묵주를 발견해서 오래 고민을 하다 결국 어제 사버렸다.

 

사이즈 때문에 이런저런 일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엄마한테 선물을 두 개나 해 드릴 수 있게 됐고ㅎㅎ

나도 꼭 마음에 드는 묵주가 생겨 너무 좋다.

멋진 것도 멋진 것인데, 무엇보다 원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름도 호크아이, 매의 눈이다.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고민했는데 어쩐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고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나는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데, 내 이름 글자에도 이런 글자가 들어선지 모르겠지만

여러 모로 내게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축성을 받을 때도 주임 신부님께서 내 손을 꼭 잡고 정성스럽게 기도를 해 주시고 미소지어 주셔서 아주 기뻤다.

날 잘 보호해주고 도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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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2. 16:37  ·  기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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