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반 세기를 넘는,
사람의 일생으로는 조금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기다리는
그런 운명이라는 것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있다
바람에 흩어져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일기를 왜 쓸까?
쓰라고 하니까, 혹은 오늘 하루를 돌아보기 위해서.
나는 주로 내 감정을 돌보기 위해 썼다.
내 안에 담아만 두기에는 버거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새어나오는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서.
중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별로 되돌아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지만..
나는 이 방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내 마음에 솔직하고 당돌한(...) 애였기 때문에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치만 딱히 받아들여지진 못한 슬픈 관계였다. (한마디로 말만 안했지 차인 거나 다름없는...)
아무튼 아름답진 않은데 그래도 그 때의 호감은 진심이었다.
마음에 가만히 담아만 두기에는 너무 천연색의 감정이어서 견딜 수 없을 때 일기를 썼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마음이라 나름대로 꽁꽁 숨겨두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있어왔던 어머니의 방청소에 걸리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그 공포의 방청소에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뭔가가 사라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대개 없어지는 1순위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그림을 너무 사랑해버린 나는 멍하니 있으면 으레 손이 낙서를 할 정도로 숨쉬듯이 그림을 그렸다. 가끔 숙제를 하다가도 몰래 노트에 그림을 그렸고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만화로 이어나가기도 했는데, 공부 외의 모든 것을 방해체로 여겼던 어머니는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것을 빨아내 압수하셨다.
그림이나 만화가 걸리면 초반에는 종종 공개처형 전시회를 당했고.. (거실에서 이거 보라며 던져놓고 가족들이 보게 했다)
이후에는 그냥 말도 없이 사라졌다. 있었는데 없었으면, 대충 아 걸렸구나 하고 단념하면 됐다.
처음에는 내가 어디 뒀나 찾았는데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찢긴 그림의 조각을 발견하고 그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
뭐 이 사건들은 언젠가 다시 글로 회상해볼 것 같긴 하다.
2순위는 일기장으로 이건 없어지진 않았고 얼핏 보면 누가 들여다봤다는 것도 모르겠지만
난 엄마가 내 일기장의 열혈 구독자라는 걸 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일기장을 두 개를 두었다. 하나는 공개용 일기장, 다른 하나는 정말 진심이 담긴 진짜 일기장.
당연하지만 진짜 일기장에는 순도높은 감정들이 있었다. 도무지 내 안에 담아만 놓을 수 없던 총 천연색들의, 내 깊은 곳의 진짜 마음이.
아무런 허물도 덮지 않은 내 마음이 있었기에 누군가 할퀴거나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조롱하면 정말로 크게 다칠 것 같아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 위로 짚단도 올리고 흙도 덮고 최대한 보호색으로 위장을 했다.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방청소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꽁꽁 숨기고 숨겨도 들켰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 싫어했던 모든 것은 그렇게 낱낱이 엄마의 입에 올려졌다.
그는 언제나 연예인의 가쉽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말했고 그건 별로더라 이건 저거더라, 그렇게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중학생 때 내가 좋아했던 남자애에 대한 얘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원 선생님에게까지 넘어가 급기야 학원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던 내 귀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수업을 같이 듣던 여러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직도 호호 웃으며 내 앞에서 선생님에게 그 얘길 하던 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들에게는 그게 아주 유쾌한 농담이었을까.
자식이 없는 사이 방을 뒤져 적어놓은 속마음을 보고 관심사를 알고 요즘의 진짜 생각을 안다.
그건 자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을까?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을까?
너무 순수해서 잔인해져버린 그런 부류의 호기심이었을까?
혹은 누군가가 완벽하게 숨겼다고 자신한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절대자의 비밀스런 우월감이었을까?
그들은 내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당당했을까?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럴 때마다 웃으며 때로는 무안해하며 얼버무렸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 때 느낀 감정들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지독한 수치심과 분노였다.
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가 숨겨놓은 보물쪽지를 파헤치는 재미에 눈이 멀어 그것을 그 사람의 진정한 면모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착각한다면, 마지막으로 찾아낼 건 관계의 종말일 뿐이다.
나는 그 후로 어디에나 도사린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정말 숨기고 싶고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남겨두지 않았다. 본디 너무 소중한 건 꺼내놓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눈으로 보아도 닳을 법한 소중한 것은, 스스로가 아끼고 지켜야 한다.
청소년기의 내겐 사생활이 희박했고 내 방도 시간도 인간관계도 짜여진 시간표와 의도된 그물망 안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에 없으면 경로를 추궁받는 일상 내 속속들이, 구석구석 타인이 존재했다.
슬픈 점은 이게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내 주위에서는..
이 곳은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치맛바람이 휘날리는 곳이었으니.
그러니 나의 방 또한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란 다시 말해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곳이다. 타인의 방이다.
내가 생활하는 몇 평의 땅에 벽이란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곳은 이름 모를 누구든지 지나가는 아스팔트 길바닥처럼 함부로 짓밟을 수 있는 불안한 벌판이었을 뿐이다.
나는 성장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머물고 쉴 수 있는 곳을 갖기를 소망했으며 보호받을 벽을 원했던 것이다.
그 당연한 소망을 내 자아가 견고해지며 외쳤을 뿐이다.
"나가!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마. 날 함부로 침범하지 마!"
누구나 이 세상에 자신이 서 있을 한 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단단하고 안전한 공간.
나는 감정을 통제하는 데 아주 익숙해져 있지만 나의 공간이라고 인식한 곳들을 침범당했다는 감각이 오면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운 원초적인 감정들이 요동친다.
아마도 최소한으로 보장받고 싶었던 나의 영역- 물리적 또는 심리적인 공간들이 맞물려 그런 침입을 나도 모르게 내 자아에 들이미는 위협 또는 도전이라고 인식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사람은 조금씩 변하기도 하나 보다.
여전히 내 영역에 대한 경계의식은 강하지만, 나는 2년 동안 많이 변화했다.
무작정 숨기고 덮어두려고만 했던 내 안의 찌꺼기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선생님에게 털어놓고
때로는 이렇게 글로 적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나를 덜어냈다.
여전히 가끔은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뒤집어쓰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내 뒤에 놓인 터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주 길고 어둡고, 또 축축했다. 가끔은 지나고서야 알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죄책감도, 분노도, 애정도 모두 제 갈길을 가고 애쓰지 않아도 그들을 내 가족이라 포용하게 된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처럼 문득 지나보니 어? 하고, 내가 더 이상 예전처럼 내 방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놀랍게도.
이제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그들도 반복학습처럼 나의 반응을 학습해 부쩍 그런 침입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만치 멀어진 곳에 세우고 있던 가시도, 그 간극도 어느 새 메워지고 무뎌진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전에도 이해는 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지난날을 떠나보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오는 것이다. 언젠가 상상했던 그런 날들이.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 지난한 눈물과 고통과 노력(과 금전)이 있었기에 나는 이런 슬픔을 절대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당연하지만 추천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간단하고 상큼하게 극복할 만한 세월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사람은 노력하면 변할 수 있으며 이 끝나지 않는 고통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수 있음을.
나는 타인의 방이었던 나의 방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쓴다.
흔히들 방은 자신의 내면 상태와도 관련이 깊다고 한다.
항상 반신반의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맞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방을 정리할 여유가 없어지는 것도 맞지만,
내 경우에도 한창 가시를 세울 때는 정말 누구도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원래도 내 방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데 굉장히 낯설고 인색한 편이고,
비슷한 맥락에서 일터나 사적인 다른 장소에서도 내 공간, 퍼스널 스페이스를 불쑥 침범하는 행위를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하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다가와 내 스크린을 뒤적이며 이러쿵 저러쿵 한다던지.. 아무리 사람이 괜찮아도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껴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내가 허용하는 타인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매우 좁은 것이다.
이건 성장 과정에서도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태생적 성향 같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남은 기억 중에도 그리 친하지 않은 반 친구와의 스킨쉽이 매우 부담스럽고 불쾌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어렸을 때라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손을 뿌리쳐 안 그래도 거리감 있던 사이가 더 멀어졌던 기억이 있다 (...)
뭐 이외에도 비슷한 기억들이 꽤 있다. 자라면서 좀더 이런 성향이 두터워졌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나 같은 케이스는 폭풍 같던 사춘기 이후 사실 부모님과는 크게 다툴 일이 없어야 했다.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매개체이자 핵심이던 입시와 공부가, 사실상 대학에 들어가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우 갈등이 약화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이 끈질기게도 내 성적과 공부에 지속적으로 개입을 하고자 했으며 실상 공부가 아니라도 성장기 시절 너무 벌어진 심리적 거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 메인 갈등으로 급부상한 것은 바로 나의 방에 관한 문제였다.
이 때의 나는 반쪽짜리 자유를 누렸다.
새 친구들, 새 무리에 끼어 이제껏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고 즐거워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루하루를 만났다.
하지만 덜 자란 반대편 날개에는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이전의 과업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하루하루 무감한 회색 나날을 보내며 시달렸던 성장기와는 달리 고통 속에서 몇 년간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고 되짚으며 곱씹어 본 후, 성인이 된 나는 내 안에 있는 게 분노란 걸 분명하게 알았다.
이 분노란 건 매일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는데 다 지나간 과거를 비겁하게 꺼내 지난한 전쟁을 반복할 엄두와 기력이 없었던 나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을 죽이기에만 급급했다.
학창 시절 틈만 나면 도서관에 달려가서 마치 수행하듯 온 책을 읽어대던 난 대학생이 되어서도 과외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고 때로는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괜찮은 일상 아래 평온을 유지하며 살았다.
그 괜찮은 모습은 사실 필사적인 고뇌의 결과였다.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지금처럼 글을 쓰고 생각하며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이루어낸 모습이었다.
겉으로 엉성하게나마 기워진 괜찮음일지라도 좋았다. 이전보다는 행복하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는 어떻게든 뚝딱뚝딱 스스로를 유지보수하고 있었을지언정 타인과의 관계는 불가능했다.
왜냐면 그 대상과 관계를 맺어야 나아질텐데, 현재진행형으로 끓고 있는 화를 안은 채로는 아무 진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분노를 품은 채로 그저 그것들이, 내가 품고 있는 어두움이 새어나가 내 주변과 나를 물들이지 않기많을 바랐다.
형식적으로나마 괜찮아지고 있는 모든 평화로운 것들을 망쳐버리지 않기만을 원했다.
그냥 그게 그 때의 나였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문자 그대로 전혀 몰랐고 아마 짐작컨대 지금도 그럴 것이다.
대학 입학 무렵 받았던 엄마의 편지를 읽고 나는 웃으며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어쩌면, 아마도 그걸로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정 그를 이해하고 연민하면서도 단 한 번 그 편지를 읽고 버려버렸다.
단 한통의 편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알면서도 쓰레기통에 넣을 수 밖에 없는 마음이 있다.
사람이 행동을 결정하는 데는 도대체 몇 가지의 감정이 필요할까?
그 순간의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이 담긴 편지를 버리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세었다.
영점 아래 자리가 수없이 많은 무수한 감정들이 싸우는 속에서 나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원은 사랑이기 때문에, 나는 이 투쟁을 알려 그들을 상처주고자 한 적은 없다.
서로가 진심이었고, 진심이었기 때문에 슬픈 아이러니다.
아마 지금이라면 그 편지를 서랍에 넣어 먼지없이 보관했을 수 있을 테지만.
삼천포로 좀 빠졌지만 이런 와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드러낼 수 없었다. 입만 열면 내가 꾹꾹 눌러담고 있던 것들이 왈칵 터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부모님으로서는 드디어 길고 긴 입시생활이 끝나 자식과의 관계에서 갈등할 것도 딱히 사라지고 꽃길같은 미래만이 남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십여 년간 벌어진 거리는 예상치 못한 곳곳에서 지뢰를 터뜨렸다.
그 첫 타자이자 최근까지도 이어진 오랜 1번타자는 방이었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 방이 항상 변해 있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정리를 한 것일 터다. 바쁘게 나가는 아침에는 잠옷도 던져놓고 갈 때가 있었으니 그런 옷가지들도 거둬들이고, 뭐 이런저런. 말하자면 좋은 의도였겠지만 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없는 사이 내 공간에 일어나는 변화 그 자체가 극도로 싫었다. 얼마나 싫었냐면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좋은 의도니 좋게 받아들여, 가 이성적으로 전혀 되지 않을 정도의 근본적인 불쾌감이었다.
내 퍼스널 스페이스가 아주 좁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내 공간을 함부로 침범당한 듯한 불쾌함은 두 경우가 아주 흡사하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것을 훔쳐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별 것 없어 보이는 갈등은 대부분 출구 없이 오랜 시간을 헤매게 된다. 이놈의 방이라는 테마도 최근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갈등의 주제였는데,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매개체가 너무 별 것 없어 보이기 때문에 그 싫음이 무시당하는 안타까운 현상으로 참 길고도 길게 이어져왔다.
나는 태생적으로 주관이 뚜렷하고 내 영역의식이 강한 사람이지만, 사실 내 성향만이 전부는 아니다.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네 일기장 같은 걸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니?"
처음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음 속으로 생생히 코웃음쳤다.
'일기장을 안 본다고? 왜 새삼스럽게?'
그 때가 나의 가장 오래된 무기력의 기억이다.
통렬하고 깊게 남은 기억이다.
아무리 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것.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겨우라면 겨우라고 할 수 있는,
단 다섯 대의 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때의 참담함과 무력함, 기타 등등의 감정들은 여전히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난 그 순간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은 것을 떠나보냈다.
그 후로 내 내면의 많은 부분에는 '어쩔 수 없다'는 단어가 자리잡았다.
상처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잘못 되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런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그저 받아들일 뿐.
왜 맞았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억울함이 들끓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왜 맞아야 하지? 내가 이렇게 맞을 정도로 잘못했나? 단지 숙제를 좀 덜 하고 이미 공부한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아니면 맞기 싫어서 둘러댄 것들이 오롯이 내 죄가 되어서?
맞기 싫어서 길길이 날뛰고 내 주장을 펼쳐도 돌아오는 건 결국 매였고 난 어쨌든 아프기 싫었으므로 결국은 마음에도 없는 용서를 빌었다.
그렇지만 딱히 경감되는 건 없었던 것 같고 마음먹은 대로 다 때린 다음 꼭 'ㅇㅇ했기 때문에 여기서 끝낸다' 는 식의 문구가 따라왔다.
나는 부당함과 불의를 명료하게 인식하는 성향이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어쨌든 굴복했다. 불만과 억울함이 들끓는 내면을 감추며 앵무새처럼 용서를 빌었고 그렇다고 경감되지도 않은 처벌에 감사하며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간 의자에 앉을 때마다 혹은 다리를 펼 때마다 피멍을 느끼며 살았다.
가끔 막대기 같은 걸로 상체를 콱 찔리거나 발로 채였을 때는 거기에 멍이 들어 한동안 숨쉴 때마다 아팠고 팔을 들어올릴 때마다 어깨가 아팠다.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한 지 벌써 1년.
내 안에 들끓는 분노를 깨달은 지 10년.
그걸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는 6년.
그리고 마침내 내가 그것에 잠식되어 있다는 걸 안 지 2년.
나는 그 2년간 선생님과 수많은 얘기를 하며 겨우 기나긴 터널을 벗어났다.
그렇게 한 편으로는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내 안에 정립되지 못했던 증오와 사랑을 겨우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나는 대학을 입학할 무렵 받았던 그의 편지를 제대로 읽지 않고 버렸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대충 지난 시간에 대한 사과와 용서의 내용이었다.
학부모들과 무슨 사찰에 다녀와 그런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시의 나는 마음 한 켠이 아프면서도 한 편으로는 코웃음을 치며 그 편지를 접었다.
당신은 과연 그 시간들이 내게 미친 영향을 알까?
어렴풋하게 헤아리나마 그 거대함을 차마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죄책감 없이 그것을 버렸다.
당신의 마음아픔을 헤아려 주기에는 너무도 나의 것이 커다랗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으므로.
지금은 이해하고 용서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애정이었음을 인정하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나는 가끔 이렇게 사로잡혀 그 곳에 있는 과거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나는 정말 가끔은 묻고 싶다.
매로 때리는 건 그렇다 쳐도 왜 종종 날 걷어차고 그렇게 대해야만 했어?
사랑했다면, 누구나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며 키운 자식이라면
어떻게 그 누구보다 낮은, 마치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만도 못한 지저분하고 가치없는 것처럼 그렇게 날 대할 수 있었을까.
왜, 어떻게.
바닥에 쓰러진 채 발로 걷어차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 감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열기로 결심한 지금도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불가해이다.